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비슷비슷한 사업들에 정부의 국고보조금 수천억원이 중복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의 국고보조사업 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감사원은 7일 주요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세출구조조정 및 주요 재정사업 추진실태' 감사를 실시한 결과 2006년 이후 15개 유사·중복 지자체 사업에 2764억원의 예산을 기획재정부가 지원했거나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강원 인제군은 '용늪 자연생태학교 정비사업' 명목으로 안전행정부(40억원)와 문화체육관광부(20억원)에 보조금을 각각 신청해 예산을 타냈다.
경북 구미시의 경우 2010년 3월 '역사문화디지털센터 건립사업'으로 160억원의 문화부 보조금을 타낸 뒤 사업부지로부터 1㎞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업목적과 내용이 같은 '채미정 주변정비사업'을 이듬해 실시하면서 90억원의 문화재청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문화부는 또 강원 영양군의 '두들마을 정비사업'에 16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도 인접 부지에 조성된 유사 사업인 '음식디미방 조성사업'에도 20억원의 보조금을 내줬다.
감사원은 "재정당국이 지자체의 국고보조금 편성 여부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해당 지자체의 기존 국고보조사업 현황을 일괄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같은 지자체의 유사·중복 사업에 국고보조금을 중복 지원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에 이양되면서 이미 별도의 지원을 받는 사업에 수천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한 사례도 적발됐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163개 국고보조사업을 지자체로 이양하면서 분권교부세를 신설, 매년 8000억~1조6000억원을 지원함에 따라 지방이양 사업은 보조금 지급 제외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화부(지방문화원 어르신 문화나눔봉사단) ▲보건복지부(경로당 냉난방비 지원) ▲산림청(임산물 상품화 지원·임산물 저장 건조시설·임산물 가공지원) 등 3개 부처는 5개 지방이양사업에 국고보조 예산을 요구, 2116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했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보조금 중복지원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문화부 등에게는 유사·중복 사업에 대한 국고보조금 축소 및 중단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MB정부에서 녹색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자전거 도로사업은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에 예산이 편성된 사례로 꼽혔다.
감사원은 안행부와 기재부가 2009년부터 추진 중인 '지방도로 자전거 인프라 구축사업'과 관련해 "사업추진 방식의 불합리, 활용률 저조, 지방비 미확보 등으로 계속 추진의 타당성이 결여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사업은 총사업비 8000억원(잔여 사업비 4184억원) 가운데 절반이 국비로 충당될 예정인데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또 단거리 위주의 자전거 이용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장거리 비중이 과도하게 설계됐고 공사가 끝난 14개 구간 중 10개 구간의 교통량이 사간당 10대 이하에 불과할 정도로 활용률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일부 지자체의 경우 사업 추진을 위한 지방비를 확보하지 못해 국고보조금이 장기간 사장될 우려가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기재부·안행부에 자전거 인프라 구축사업의 신규추진을 재검토록 하고 국토교통부의 '국도 자전거도로 구축사업'도 같은 이유로 사업 재검토를 통보했다.
정부가 민간영역의 사업을 추진한 탓에 예산이 낭비되기도 했다. 교육부가 올해까지 총 164억원의 예산을 지원한 '국가영어능력평가 시험(1급) 개발 및 운영사업'이 이에 해당한다.
2009년부터 교육부가 추진한 이 사업과 관련해 기재부는 2012년 7월 사업 평가결과 법적근거가 없고 민간영역이므로 올해 예산을 줄이고 내년께 사업을 폐지토록 하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교육부는 사업 참여대학들이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반발하자 사업 성과평가도 없이 사업비 전액을 국고로 보조키로 했으며 사업명칭도 바꿔 올해 예산은 지난해보다 22억원 늘렸다. 2014년 이후에도 국비를 매년 지원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을 수정키도 했다.
변화된 사업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예산이 줄줄 새는 경우도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산 대형 풍력발전기(2~3㎿급)의 수출 상용화에 필요한 운영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새만금 대형풍력 시범단지 사업'(20㎿)이 대표적이다.
애초 이 사업은 오는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국방부와 환경부가 군 레이더 운용 저해, 조류 피해 발생 등을 내세워 반대하면서 사업부지가 새만금에서 군산항으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총사업비가 20% 증가(827억원→999억원)하고 올해 5월 현재 기본계획도 수립되지 않는 등 사업 진행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국내 풍력산업의 발전으로 이미 2~3㎿급 풍력발전기의 상용화가 이뤄지는 등 사업 여건이 변화했는데도 산업부는 설계·공사비 등으로 보조금 122억원을 교부했다. 감사원은 국고 보조금의 장기간 사장, 예산 낭비 등이 우려된다면서 사업추진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결과를 그대로 예산에 반영할 경우 향후 5년간 약 3조원 이상의 예산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