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정신과의사 이시형 박사의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책을 샀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책을 사기 전 내 마음이 어땠는지, 그리고 읽고 난 뒤 내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배짱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조금도 굽히지 아니하고 버티어 나가는 성품이나 태도’를 뜻한다. 쉽게 풀면 겁먹거나 남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짱으로 삽시다』는 그 책을 사기 위해 일부러 서점에 갔다가 산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책 저 책을 둘러보다가 제목이 눈에 들어와 집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제목이 유난히 강하게 마음에 와닿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여러 상황에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도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혼자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은 적은 더더욱 없었다. 아들 삼형제인 집에서 자라 여자라고는 어머니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 대학에 들어가 미팅에 나가 처음 만난 여학생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일도 편하지 않았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다. 어색한 순간에 담배라도 꺼내 들면 조금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그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가 꽤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작은 행동수칙을 정해 놓고 살았다. 혼자 있다고 밥을 거르지 않기,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가서 먹기, 혼자 영화 보기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을 그 시절에 한꺼번에 다 해봤다는 뜻은 아니다. 살아오면서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 왔다고 하는 편이 맞다.
누군가는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어색해 끼니를 거르거나,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이 쑥스러워 보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험을 쌓아가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화관에 내가 혼자 왔는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지 다른 사람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대부분은 자기 일에 더 관심이 많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는 교내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강의시간도 다르고 활동영역도 서로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러면서 혼자 밥 먹는 일은 아주 평범한 일이 됐다.
식당에 자리가 없어 모르는 사람과 합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푸드코트에서 자리가 없으면 양해를 구하고 맞은편에 앉아 식사하는 일도 이제는 편하다. 서로 자기 식사에 집중하면 그뿐이다.
우리가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것은 실제의 시선보다 머릿속에 만들어 놓은 시선을 더 의식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배짱은 거창한 용기라기보다 작은 불편함을 하나씩 넘어서는 데서 시작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남들과 생각이 다를 때 자기 의견을 말해보는 것이다.
토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견해를 밝히는 일이 처음에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토론을 경험하면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토론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꼭 한 가지를 말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평소의 친밀함과 토론에서의 견해 차이는 별개의 문제이니 마음 상할 필요가 없다고.
젊은 시절의 나는 배짱을 주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의미도 달라졌다.
이제는 배짱이 자기 마음을 지키는 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자기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반드시 배짱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더 큰 배짱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평가도 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 평가가 내 삶의 기준 전체가 되는 경우다. 누군가의 칭찬과 비판에 따라 내 마음까지 크게 오르내린다면 내 삶의 중심이 밖에 놓여 있는 셈이다.
비교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는 성적을 비교하고, 직장에서는 직위와 연봉을 비교한다. 나이가 들면 재산과 집을 비교하고, 때로는 자녀의 성취까지 비교한다. 하지만 비교에는 끝이 없다. 비교를 기준으로 만족을 찾는 한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배짱은 무엇인가를 더 얻기 위한 힘이라기보다 불필요한 비교에서 벗어나는 힘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도 받아들이는 것, 때로는 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으려 하지 않는 것, 누군가 나를 오해하더라도 모든 오해를 바로잡으려 애쓰지 않는 것. 이런 것도 배짱의 한 모습일 수 있다.
특히 사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직함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누구인가보다 과거에 어떤 자리에 있었는가를 이야기하기 쉽다. 그러나 직함은 일정 기간 맡았던 역할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명함의 직함도 사라진다. 결국 직함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남의 평가나 과거의 지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배짱이라면, 여기에도 분명한 경계는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무례하게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는 분명해야 한다. 그 범위 안에서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여름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조차 괜히 눈에 띄는 것 같아 쑥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눈 건강을 위해 선글라스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결국 많은 어색함은 행동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서 생긴다.
돌이켜 보면 대학 시절 우연히 집어 든 『배짱으로 삽시다』는 내용보다 제목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은 책이었다. 그 제목을 따라 작은 행동을 하나씩 해봤고, 그 과정에서 남의 시선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배짱은 남을 이기는 힘도, 남 앞에서 큰소리치는 태도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내 마음을 지나치게 맡기지 않고, 내가 선택한 삶을 그 결과까지 포함해 받아들이는 힘이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배짱을 남의 눈치를 덜 보는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기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필요한 것도 아마 그런 배짱일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시선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말고, 자기 삶을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생각하는 배짱의 진정한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