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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9.09. (수)

정운기의 '대한민국 관세의 선택'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 한국에는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개방은 시키되, 국익과 공급망까지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세계 무역 질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은 관세를 제조업과 일자리, 공급망과 국가안보를 지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중국은 관세뿐 아니라 수출통제와 산업 지원, 핵심 광물 정책을 결합하고 있으며, EU도 경제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통상·산업정책을 다시 짜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자유무역을 계속 확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계적인 보호무역의 흐름에 맞추어 우리도 관세장벽을 높여야 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자유무역이나 보호무역이냐의 양자택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제3의 길이 필요하다. 개방의 이익은 최대한 살리되 국가적으로 지켜야 할 산업과 공급망은 전략적으로 지키는 길이다. 이를 ‘전략적 자유무역’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유무역은 대한민국 성장의 토대였다.

대한민국은 자유무역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우리는 자원이 부족하고 국내시장이 상대적으로 작다. 원유와 가스, 광물과 원재료를 해외에서 들여와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면서 성장했다. WTO 체제와 FTA 확대는 우리 기업의 시장을 세계로 넓혔고, 관세 인하는 기업이 더 경쟁력 있는 원료와 부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세계가 보호무역으로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도 높은 관세장벽을 쌓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수출해야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먼저 문을 닫으면 상대국 역시 우리 상품에 문을 닫을 수 있다.

 

대한민국에 자유무역은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경제의 기본 토대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자유무역과 오늘의 자유무역이 같은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가장 싼 곳에서 사면 된다’라는 시대가 달라졌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의 기본 논리는 비교적 단순했다. 가장 경쟁력 있는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싼 곳에서 원료와 부품을 조달하면 됐다. 기업에는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위기, 반도체와 핵심 광물을 둘러싼 수출통제 등을 경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특정 국가에서 핵심 원료의 대부분을 조달하고 있는데 그 국가가 갑자기 수출을 제한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내 생산 기반을 모두 없애고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부품이나 의약품이 위기 상황에서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평상시에는 가격이 중요하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얼마에 살 수 있는가?’보다 ‘그 물품을 살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여기에 경제 안보 시대의 핵심 문제가 있다.

시장가격에는 공급망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에서 생산한 핵심 원료가 국내산보다 20% 저렴하다고 하자. 기업이 값싼 수입품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국내 생산업체는 경쟁력을 잃고 결국 생산을 중단할 수도 있다.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몇 년 뒤 그 국가가 정치적 이유나 자국의 필요 때문에 수출을 중단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 국내 생산시설을 다시 만들려 해도 기술과 인력, 설비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오늘의 수입가격에는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에는 ‘공급망 위험비용’이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경제 안보 시대에는 정부가 시장을 보완해야 한다.

 

주요 품목을 평가할 때 단순히 가격과 관세율만 볼 것이 아니라 특정국 의존도, 대체조달 가능성, 국내 생산능력, 공급 중단 시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관세정책이 공급망 정책과 연결돼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미국식 보호무역을 따라갈 수도 없다. 경제 안보가 중요하다고 모든 산업을 보호할 수는 없다.

 

특히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

미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풍부한 자원, 첨단기술과 금융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에너지와 광물, 상당수 원재료와 중간재를 해외에 의존하면서 생산한 상품을 다시 해외시장에 판매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관세를 높이면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전에 기업의 원가부터 올라갈 수 있다. 결국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소비자 부담까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관세를 올리는 것도 위험하고, 자유무역이라는 이유만으로 관세를 낮추는 것도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관세가 높으냐 낮으냐가 아니다. 어디에, 왜, 어떤 목적으로 관세를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한국형 제3의 길, ‘전략적 자유무역’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제 안보 시대의 관세정책을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개방 영역’이다.

국내 산업에 특별한 위험이 없고 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상품은 자유무역의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핵심 원료와 부품은 기업이 경쟁력 있는 곳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방어 영역’이다.

덤핑이나 외국 정부의 과도한 보조금 등 불공정한 조건으로 상품이 유입되어 국내 산업기반을 훼손할 때는 WTO와 FTA가 허용하는 반덤핑관세·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자유무역은 불공정 무역까지 방치하라는 원칙이 아니다.

 

셋째, ‘전략관리 영역’이다.

반도체·배터리·핵심 광물·에너지·의약품·식량 등 공급이 중단되면 국가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품목은 일반 상품과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는 관세뿐 아니라 비축,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 기반 유지, 우호국과의 공급망 협력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개방할 것은 열고, 불공정 무역에는 대응하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것은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 이것이 한국형 제3의 길이다.

 

관세정책에도 ‘공급망 위험지도’가 필요하다

이를 정책으로 연결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정부가 주요 전략 품목에 대한 ‘관세·공급망 위험지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어떤 품목을 어느 국가에서 얼마나 수입하는지, 특정국 의존도가 얼마나 되는지, 국내 생산이 가능한지, 대체 수입국이 있는지, 공급이 중단되면 어느 산업이 영향을 받는지를 관세율과 함께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핵심 소재의 80~90%를 한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무역통계가 아니라 경제 안보의 경고신호로 보아야 한다. 반대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핵심 원료에 높은 관세가 남아 있다면 관세를 낮추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관세정책의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관세를 올리는 것만이 산업정책은 아니다. 필요한 원료의 관세를 낮추는 것도 산업정책이고, 불공정 수입에 관세로 대응하는 것도 산업정책이며, 공급망 다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경제 안보 정책이다.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전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자유무역으로 성장했다. 그러므로 자유무역의 문을 스스로 닫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핵심 산업과 공급망까지 시장에만 맡겨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국내에서 생산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필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평상시에는 효율성을 추구하되 위기에 대비한 회복력을 확보하고, 시장은 최대한 개방하되 전략산업은 무방비로 두지 않으며, 보호가 필요할 때에는 국제규범에 맞는 정당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 이것이 ‘전략적 자유무역’이다.

 

이제 우리 관세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관세를 얼마나 낮출 것인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무엇은 자유롭게 열고, 무엇은 반드시 지키며, 무엇은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세계가 관세를 국가전략으로 바꾸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도 관세를 다시 보아야 한다.

 

개방은 계속하되 무방비로 개방하지 않는 나라. 보호는 하되 보호주의에 빠지지 않는 나라. 자유무역을 지키면서도 국익과 경제 안보를 지킬 줄 아는 나라. 그것이 경제 안보 시대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제3의 길이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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