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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6.09.09. (수)

오문성 교수의 '라이프 Pick'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매달릴 때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런 우울감 자체는 반드시 병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상실이나 실패에 대한 정상적인 정서 반응일 수 있다. 문제는 우울한 감정이 반복되고 장기간 지속되면서 일상의 기능까지 떨어뜨릴 때다. 이때 우리는 단순한 우울감과 질환으로서의 우울증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신질환 진단의 대표적인 기준인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 본문개정판(DSM-5-TR)』은 주요우울장애(Major Depressive Disorder)를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상태’로 보지 않는다. DSM-5-TR에서는 우울한 기분, 흥미·즐거움의 현저한 감소, 식욕 및 수면 변화, 피로, 무가치감, 집중력 저하,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등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때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 저하 중 하나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사회적·직업적 기능에 뚜렷한 저하가 동반되어야 한다. 즉, 단순한 기분 저하와 달리 증상의 수와 지속 기간, 일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실패와 어려움을 경험했는데도 왜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빨리 회복하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우울감에 머물다가 우울증으로까지 진행할까.

 

우울증을 연구한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중요한 관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다’고 설명하기에는 개인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같은 직장에서 비슷한 실패를 경험해도 한 사람은 “이번에는 잘 안됐지만 다음에 다시 해보자”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나는 역시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잘될 가능성이 없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사건은 비슷하지만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여기에는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심리학에서는 신경증적 성향, 즉 걱정과 불안, 부정적인 감정을 비교적 쉽게 경험하고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향이 우울증의 중요한 취약요인 가운데 하나로 연구되어 왔다. 물론 신경증적 성향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동일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사건을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부정적인 생각에 오래 머물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마틴 셀리그먼(Martin E. P.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셀리그먼의 초기 동물실험에서는 자신의 행동으로 불쾌한 자극을 피하거나 멈출 수 없는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한 동물들이, 나중에는 실제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도 적극적으로 회피하거나 탈출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관찰됐다. 즉 반복된 통제 불가능의 경험이 이후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점차 “내가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쌓이면 새로운 기회가 생겨도 시도하려는 의욕이 줄어들고, 결국 무기력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려움의 크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느끼는 통제감이다.

 

한편 우울감은 통제와 관련된 또 다른 상황에서도 커질 수 있다. 실제로는 자신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일을 끝까지 바꾸려고 할 때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을 예측하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고, 충분히 설명하면 상대방이 이해해 주며, 최선을 다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통제감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이지만, 현실의 모든 일이 우리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마음이나 이미 지나간 과거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다. 조직의 최종 결정이나 경제 상황, 시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까지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노력할수록 좌절이 반복될 수 있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계속 통제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무력감과 우울감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잘 설명했으면 저 사람이 마음을 바꿨을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처음에는 책임감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통제 시도와 좌절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는 흔히 ‘통제하려는 시도→실패와 좌절→반추→자기비난→무력감→우울감’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반추’다. 반추는 이미 일어난 일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를 계속 생각한다. 문제해결을 위한 성찰과 반추는 다르다. 성찰은 해결책을 찾으면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지만, 반추는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감정만 계속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못지않게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는가도 중요하다.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이론(cognitive theory)은 우울증의 형성과 지속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다. 벡은 우울한 사람이 자신, 세상,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에 주목했는데, 이를 ‘인지삼제(cognitive triad)’라고 한다. 즉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부족하고 가치가 없다”, 세상에 대해서는 “세상은 나에게 불공평하고 힘든 곳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좋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같은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정서적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일은 실패했다”는 것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평가에 그치지만,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하나의 실패를 자기 자신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확대하게 된다. 여기에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앞으로도 잘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한 번의 실패가 자신과 세상, 미래 모두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으로 확장된다. 벡은 이처럼 자신과 세상,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가 우울한 감정을 지속시키고 우울증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우울감을 다루는 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아는 데 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얼마나 노력하고 어떤 태도로 상황에 대응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고 잘 설명하더라도 상대방의 반응이나 일의 최종 결과까지 내 뜻대로 만들 수는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고, 예상하지 못한 사고나 우연한 일까지 통제할 수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의 노력과 에너지를 어디에 쓸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우울증에는 유전적·생물학적 요인, 기질, 성장환경, 스트레스, 인간관계와 사회적 지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심한 우울증은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따라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 역시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상적인 우울감이 반복될 때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문제가 정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니면 이미 나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일을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에 에너지를 쓸 것인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 우울감을 다루는 출발점도 모든 것을 내 뜻대로 바꾸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힘을 쓰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어느 순간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지혜를 발휘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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