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찌는 더위에 바람 한점없고 열기만 올라오는 한낮. 삐질삐질 땀이 새어나오고 칙칙한 기운이 사무실을 습격한다. 냉방기는 가동한다고 하나 별 효과가 없는듯하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그 소리는 땡볕에 사납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정중하고 성의 있게 받아야 한다. 난 프로니까. 근데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말본새가 심상치 않다. 무더운 대낮부터 한 잔 걸친 모양이다. 횡설수설 무슨 소리지 알아듣기 힘들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름 베테랑이라 자부하는데 쉽지 않다. 아마도 더위 탓 일게다. 그도 나도 더위로 정신이 혼미해져 소통에 잡음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니 매번 강조하는 소리가 또렷이 전달된다.
“나는 노숙자다!”
노숙자가 벼슬은 아닐진데 자꾸 강조한다. 자신이 몹시 힘든 상황임을 알리기 위한 방편인 것 같다. 그리고 고향에 있는 조상묘지가 압류돼 있단다. 순간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온다. 압류가 되어 있다는 것은 체납자라는 사실이고 체납자라면 분명 고지가 돼 있을 터, 고지의 원인을 조회하는 민첩함을 잃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양도소득세가 고지되어 있었고 세금을 납부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양도의 원인이 경락에 의한 소유권 이전이다. 잠시 말문이 막히고 답변하는데 애로가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에 의하면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망한 사람에게도 세금을 매기냐고 역정을 낸다.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파악할 길은 없지만 부동산 경락대금이 대부분 그들의 수중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연락이 두절되어 행방이 묘연하고 숨어 다니는 입장일 때가 많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것이 내 일이고 의무인 것을.
양도소득세는 유상 이전되는 부동산 등에 대해 과세된다. 물론 경매에 의한 이전인 경우 빚을 갚느라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고 어려운 상태에 있겠지만 그 대가로 채무가 줄었으니 유상대가 인 것만은 확실하다. 즉 부동산을 팔아 그 돈으로 빚을 갚은 꼴이다. 그는 내 설명에 일면 수긍하는 듯 했다. 한편 양도소득세는 양도가액과 취득가액의 매매차익에 대해 세금이 나간다는 설명도 해줬다. 그러자 자신은 손해봐서 팔았기 때문에 세금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계속 손해 봤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 양도가액인 경락가액과 취득가액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바가 없는 듯 했다. 그가 주장하는 양도가액과 결의서상 양도가액에 차이가 많았다. 그래서 연락처를 남기면 세금 고지에 대해 문제점이 없는지 다시 한 번 검토를 해보고 전화를 준다고 하니, 자신은 연락처가 없다고 한다. 대신에 확인을 해 놓으면 나중에 전화를 준다고 하여 흔쾌히 수락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자료에 대해 찬찬히 검토를 해봤다. 양도가액에 대해서 당초 결정한 경락가액이 맞는지 조회 해보았다. 몇 번을 검토해도 결정된 양도가액이 정확하며 그가 말하는 가액은 너무 낮고 잘못 알고 있음이 틀림이 없었다. 취득가액은 취득한지 오래된 임야라 환산가액으로 결정된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실제 취득가액을 제시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의 전화를 받고 확인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고지와 압류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참을성 있게 설명해주었다. 또한 취득가액에 대한 증빙을 제시하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테니 언제든지 방문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분명 내 말의 취지를 이해하고 고지와 압류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수긍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압류된 땅이었다. 자신은 노숙자이고 국가가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으므로 압류를 풀어달라는 반복되는 읍소작전이 시작되었다. 그 땅을 살펴보니 압류 된지가 오래되었고 공매의뢰 검토대상 토지로 올라와 있어 공매의뢰를 한 상태였다. 대략난감이다.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을 아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사실대로 공매중이라고 넌지시 말하니 갑자기 그의 목소리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말이 빨라진다.
“그것은 안 됩니다. 그 땅은 조상 땅이야. 내 부모님이 묻혀있는 곳이라고…”
이제까지 어떻게 참았나 싶다. 체납처분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감정은 통제 불능 상태다. 그렇게 길고 빠르고 매서운 욕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너는 애비 에미도 없는 호래자식이냐. 조상님도 몰라보는 너 같은 놈은 모가지를 따버리겠다. 그 재주가 기특하다. 저렇게도 욕할 수 있는구나. 마치 남의 일 구경하는 것처럼 아득하여 아무런 대꾸도 떠오르지 않는다. 소나기를 맞듯 피하지도 못하고 욕에 흠뻑 젖었다. 전에는 젊은 혈기로 욱하고 받아쳤을 텐데 그런 기력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화보다도 목구멍으로부터 슬픔 같은 것이 울컥하고 올라왔다. ‘노숙자’ 그가 강조하던 단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 그의 욕설이 슬프고 안쓰럽다. 이 정도쯤이야 단련된 줄 알았는데 가만히 내 가슴을 들여다보니 주인 잃고 초라하게 떨고 있는 강아지 같다.
어느 법인 대표자가 체납독촉 전화에 한참동안 욕설을 퍼붓고 끊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가 자신을 내팽개치고 자포자기 할까봐 노심초사했었다. 그런데 보름 후에 찾아와서는 아주 공손하게 공무원에게 욕을 해놓고 마음이 편치 않았노라 고백하는 것이었다. 물론 밀려있는 세금도 완납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밀린 세금을 받을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회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가 전화를 부서져라 끊은 뒤 압류 된 땅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적도에는 그가 말하는 묘지가 없었지만 인터넷을 통한 항공사진에는 촘촘히 묘지가 보인다. 그의 말대로 조상의 묘가 있는 조상 대대로 대물려 온 땅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산관리공사에 연락해 공매 중지를 부탁했다. 교양머리없이 모욕적이고 불쾌한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 뱉는 그가 밉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들리는 것은 그의 욕설만은 아니었다. 정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는 항변도 아니었다. 그 땅으로 인해 오히려 정부보조를 받지 못한다는 억울한 호소도 아니었다.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처지가 가엾어 보였다. 그리고 조상이 묻혀있는 땅만은 지키고 싶다는 그의 진심과 자존심을 읽을 수 있었다. 조상님에게 면목없어하는 죽지 않은 양심을 볼 수 있었다. 그 양심마저 무너진다면 앞으로 갈 길은 자명하다. 더 이상 막무가내로 망가져서는 아니 된다.
노숙자를 양산하는 현실이 답답하다. 아무런 희망 없이 추락하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들 자신의 잘못과 책임이 제일 크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이를 막을 수없는 경제 현실이 무겁고 한숨이 절로난다. 그들이 하루빨리 자존감을 되찾고 재기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메마르고 절망으로 찌든 가슴에 부디 희망이 싹트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일하다보면 이런저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땀나게 일하는 즐거움이 크지만 곤혹을 치를 때도 있다. 업무 특성상 욕도 많이 먹는 직업이라 그리 편할 수많은 없다. 그래도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오늘은 그것에 위안을 삼아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