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기유학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6.01.19 00:00:00

곽태원(郭泰元) 서강대 교수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 6년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해외유학은 10배 정도 늘었고, 특히 초등학생들의 해외유학은 같은 기간에 30배가 늘어나는 등 조기 해외유학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작년 한해동안만 해도 유학을 위한 지출이 30억달러, 즉 3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우선 조기유학을 떠나는 이유들을 생각해 보자. 제일 중요한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영어교육인 것 같다. 글로벌 시대에 적응하려면 영어가 필수적인데, 한국의 영어교육이 너무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교폭력이나 왕따 때문에 떠나는 도피성 유학도 있다고 한다.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부담을 탈피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설명들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만한 돈을 들이면 국내에서 영어공부 제대로 못시키겠는가? 외국여행을 한번도 안했으면서도 본토발음으로 영어를 뛰어나게 구사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지 않는가? 사교육 부문에서 영어교육서비스의 질은 매우 빠르게 개선돼 왔다.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부담문제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외국에 나가서 제대로 공부하려면 얼마나 더 치열한 경쟁을 견뎌야 하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돈도 그렇다. 유학시키는 비용이 학원 보내는 비용보다 더 싸다는 주장은 거의가 억지다. 도피성 유학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여러가지 내세우는 명분이 있고 더러는 친구 따라 강남가는 친구들도 있지만 조기유학 열풍의 기저에는 우리 사회의 현재와 장래에 대한 불안과 불만 그리고 좌절같은 것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평준화 이념의 족쇄를 차고 있는 데다가 특정 이념집단의 교사들이 휘젓고 다니는 공교육 현장을 경험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분노와 좌절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국가의 장래를 결정할 공교육 현장이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를 어떻게 밝게 볼 수 있겠는가?

조기유학이 가져올 수 있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인가? 많은 신문 사설들은 막대한 비용, 어린 학생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탈선할 가능성, 가족해체 현상, 그리고 위화감 조성 등을 문제로 들고 있다. 이중에서 위화감 문제는 조기유학만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걸핏하면 위화감을 거론해 위화감을 부추기는 풍조가 더 문제라고 본다. 이 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는 조기유학의 비용이나 위험은 개인적인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용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이를 지탄하거나 규제해야 할 명분은 찾기 어렵다. 개개인의 판단을 국가가 바로잡아 주겠다는 가부장주의는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다른 문제는 없는 것일까? 오히려 조기유학의 긍정적인 면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어려서 부모를 떠나 객지에서 고생하며 성공한 아이들이 나중에는 글로벌 시대의 인재가 돼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필자는 이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교 수준에서의 조기유학은 이른바 두뇌유출의 초기현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 조국을 떠나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성공해 글로벌 리더가 됐다면 한국이 그 인재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요컨대 조기유학에 관해서는 나가는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지 말고 인재를 밀어내는 사회와 국가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지방재정이론에 '발(足)에 의한 투표' 모형이 있다. 국가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조기유학을 보내는 부모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세금을 내고 받을 수 있는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 중 하나인 공교육에 극심한 불만을 느끼기 때문에 자비로 대체서비스를 찾아 나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세원까지 따라 나갈 수 있다는 점에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발에 의한 투표' 모형이 보여주는 전망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공교육 부문에 재정을 더 투입해서 영어교육을 더 잘 시키도록 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막아야 한다. 공공부문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우리는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여기에 귀중한 세금을 더 쏟아부을 수는 없다. 사학과 사교육을 잡으려 하지 말고 규제를 풀어 자유롭게 경쟁을 시켜야 한다. 우리 교육의 사적 부문이 공적 부문과 경쟁할 뿐만 아니라 외국의 교육기관과도 경쟁하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건강한 경쟁이 회복되면 사회가 활기를 되찾게 되고 장래에 대한 소망이 살아나게 된다. 발이 있는 납세자들은 소망이 있는 사회에서 그들의 후손과 함께 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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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취재반 기자 press@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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