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유산상속의 노래

2004.04.26 00:00:00

김면규(金冕圭) 세무사


유산을 상속하게 되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따라서 유산상속을 포기하면 납세할 의무도 없겠지만 상속을 포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상속세를 내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만 유산이 없어서 또는 유산가액이 상속공제액에 미달하기 때문에 상속세를 내지 않는 상속인이 있을 뿐이다.

필자는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할 때는 상속세를 취급해 본 일이 없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상속세를 내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으며 내국세 행정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미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이 자식들에게 상속을 해 줄만한 재산형성이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가난했으니 상속세를 걱정할 여지도 없었다는 뜻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70년대 중반부터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개인적으로도 부를 축적하기 시작해 집값이 뛰고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요새는 쓸만한 집 한채만 유산으로 물려받아도 상속세 과세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세무사들은 상속세 신고로 인한 상속인들의 절박한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상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84년에 '상속세와 증여세의 이론과 실무'라는 책을 한국세정신문사에서 출판하게 됐다. 아마 상속·증여세에 관한 일반서적으로는 최초의 출판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때 원고를 마감할 즈음 김광규 시인의 시 한수가 우연히 눈에 띄였다. 그 시제가 '유산상속의 노래'다. 시의 내용은 상속에 얽힌 상속인들의 미묘한 심정을 어떤 연극의 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전개로서, 부각되는 장면이 나에게도 아주 야릇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책 맨끝에 이 시를 옮겨 놓았다.

'유산상속의 노래'

"제각기 이 세상에 태어나
제 나름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입장료를 내고
오후 7시에
세종문화회관에
모인다
무대위에
체구와 음성과 분장과 의상이 다른
네 사람의 남녀가 등장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딸은 아버지를 잃어서 슬퍼하고
아들은 재산이 생겨서 기뻐하고
사위는 장자상속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며느리는 보석상에 진 빚을 갚아달라고 호소한다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제 나름대로 절박한 사연을
노래하는 이 장면은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별로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1980년대의
서울과
전혀 다른데
오랫동안 박수가 나올만큼
감동적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갖가지 불미스러운 일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부모를 살해하는 불효, 형제간에 의를 저버리는 처절한 싸움, 그치지 않는 재판 등 끔찍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 줄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에게 또는 사회에 재산을 내놓는 일은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기부문화의 부재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외국의 기부문화를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우리 집과 대문을 마주하고 사는 부부가 있었다. 우리와도 다정하게 지내면서 살아왔다. 이 집은 딸만 일곱이었다. 모두 시집을 가서 제법 잘 사는 것으로 보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느 딸이 오든지 부모와 함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앞집 같으면 아들이 필요없겠다고 했다. 딸들이 그렇게 부모에게 잘 해드리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들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딸들의 싸움이 시작됐다. 내 사무실까지 찾아왔지만 나는 중재할 수가 없었다. 그 까닭은 헤아려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바로 유산상속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가난한 집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 고생하면서 자란 형제들은 서로 우애하면서 살아간다.

인생의 공식은 참으로 미묘하다. 어떠한 논리의 작용이 부의 축적과 더불어 상반되는 두가지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 영원한 수수께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가치는 분명히 후자에 둬야 할 것으로 확신한다.

※본란의 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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