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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조선총독(總督) 남차랑(南次郞)은 소위 황도불교(皇道佛敎)라는 해괴망측한 이름으로 한국 불교를 일본 불교에 통합(統合)하는 것을 획책(劃策)한 바 있었다.
그래서 그 정책의 일환(一環^고리)으로 남차랑(南次郞)은 조선 전국의 노승(老僧) 석덕(碩德)을 불러모아 일장연설을 한 끝에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렇게 해서 회의가 한참 진행 중에 있는데 갑자기 문이 확 열리고 백발동안(白髮童顔)의 풍신좋은 괴위(魁偉^크고 위대함)한 얼굴의 노승(老僧)이 나타났다. 송만공(宋滿空) 스님이었다.
장내의 시선(視線)이 모두 그리로 쏠리고 회의장 내에 한발자국 들어선 송 스님은 문 앞에 버티고 서서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모두 일어나세요. 사내(寺內) 전임(前任) 총독(總督)이 지금 지옥(地獄)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소. 우리 빨리 그를 지옥에서 빼내러 갑시다. 그 사람은 우리 조선 불교를 망쳐 놓은 자이지만 불교는 본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것. 우리가 아는 처지에 그를 지옥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자 어서 모두 일어나시요. 어서…."
갑자기 지른 호통에 연단에 있던 남(南) 총독(總督)은 통역으로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그 기세(氣勢)에 눌려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임(前任) 총독(總督) 테라우찌(寺內)는 소위 사찰령(寺刹令)이라는 훈령(訓令)을 내려 우리 불교(佛敎)를 관(官)의 관리하(管理下)에 묶는 종교탄압(宗敎彈壓)을 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그 벌(罰)로 지금 지옥에 떨어져 있으니 남차랑(南次郞) 너도 그런 일을 하면 지옥간다는 일종의 공갈(동갈^위협)이었다. 그 얼마전 마침 대라우찌(寺內) 전 총독이 급사(急死)를 했으니 시기적으로 정곡(正鵠^과녁)을 찌른 것이다.
송만공 스님이 조선 총독에게 호통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 잘 했다고 쾌재(快哉)를 부른 사람은 애국시인(愛國詩人)이며 국내 최대의 석학(碩學)인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선생이었다. 두 사람은 관포(管鮑)의 극친한 사이였다.
송만공이 그 회의장을 나오자 곧바로 찾아간 곳이 서울 성북동(城北洞)에 있는 만해 선생의 서실(書室)이었다.
찾아온 송만공에게 "아, 그 남차랑 그 놈을 주장자(柱杖子^스님이 좌선(坐禪)이나 설법(說法)을 할때 갖는 지팡이)로 한대 갈기지 그랬어"라고 하자 이에 대한 송만공의 대꾸가 명언(名言)이었다.
"막대기는 곰이 가지고 노는 것이고, 사자(獅子)는 소리를 지르는 법이지."
그날 밤 밤늦게까지 술잔을 나누다가 일어서는 송만공 스님에게 한용운 선생이 "자네 모처럼 찾아와서 내 마누라 입도 안 맞추고 그냥 가는가?"하고 농담을 하자 송 스님은 "참 그렇군, 그래야만 자네씨가 부인에게 더 귀여움을 받을 건데 내가 워낙 못나서…"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자기 손바닥에 입술을 대고 쪽 빠는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두분의 남다른 애국심과 해학(諧謔)과 다정함을 말해주는 고금(古今)에 없는 일화(逸話)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