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다사다난했던 병자년을 뒤로 하고 어느덧 정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세월이 가는 것은 서럽지 않습니다만 어머님께서 기력이 전만 못하신 것 같아 한없이 두렵고 가슴 아픕니다.
어머님께서는 일생 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의연(毅然)하게 살아오셨으며 부족한 자식에 대한 한마디의 원망도 질책도 없이 당신의 하실 일만 해오신 큰 `별'이십니다. 이제 어머님의 연세가 80이 가까워지다 보니 자식된 도리를 못 다한 불효자로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거룩하신 어머님의 남다른 정성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있음을 자각하고, 현 시점에서 어머님의 생애를 재조명해 봄으로써 지난 각고의 세월들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자성(自省)하면서 어머님의 여생이 더욱 편안하시고 천수(天壽)를 누리시길 기원 드리는 바입니다.
어머님은 큰 `별'이십니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몸과 마음이 예전같지 않으시면서도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님의 고귀하신 따뜻한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고는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는 평범한 진리가 말해주듯이 자식에 대한 애정은 물론 손자·손녀들에게 자상하신 할머님의 한없는 사랑에 머리 숙여 존경하옵니다. 어머님의 한평생을 어떻게 조명해 볼까요? 먼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몇 마디로 나누어서 저와 얘기 좀 해볼까요?
어머님께서는 현명한 대답을 하시겠지만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에 대한 대답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이 소자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신혼기(新婚期)
어머님! 밀양 고을 삼량진읍 금천리 청주 송씨집안의 1남4녀 중 셋째딸로 자라 꽃다운 나이에 여주 이씨 가문에 시집오시어 시부모님의 사랑과 대가족제도하에서 아들 딸 낳으시고 정답게 살아오시던 활성리의 신혼시절이 생각나십니까?
어머님 그때는 행복하셨나요?
암운기(暗雲期)
6·25동란은 신혼의 즐거움도 단란하던 가정의 평화도 한 순간에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당시 애국청년 활동을 하시던 아버님께서 구국(救國)활동중에 목숨을 잃게 되었지요. 그때 충격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내셨습니까?
청춘의 나이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속에서도 삼남매의 장래를 위하여 어린 자식들 앞에서 눈물 한 번 안 보이시고 불같이 뜨거운 모성애로 역경을 이겨오신 어머님의 현명하신 판단과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 상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 참담한 시절을 생각해 보면 어머님의 처지가 얼마나 절박하셨을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머님! 험난한 세상을 살아오신 용기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때가 일생을 두고 암운기라고 해야 옳을는지요…….
여명기(黎明期)
어머님께서는 당시 건강이 좋지 않던 외동딸을 가슴속에 묻었을 때 얼마나 비통하셨습니까? 그때 어머님께서는 가난과 무지를 원망하시며 한없는 절망감에 빠지셨습니다. 그후 세월이 약이 되어 우리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각기 직장을 갖게 되었지요.
어머님은 그때 동생과 함께 서울로 가셔서 서울 사람이 되셨고요! 동생이 S물산에 취직이 되고 집도 마련하게 되자 어머님은 곧 서울 며느리를 맞이하시고 손자·손녀를 얻게 되셨지요. 어머님 그때의 감회는 어떠하셨던가요? 마음이 좀 놓이시던가요?
안정기(安定期)
그 후 차츰 서울생활에도 익숙해지시고 형제가 모두 아들 딸 고루 갖고 동생이 하는 사업도 순조로워 부산과 서울을 왕래하시면서 손자·손녀들의 재롱을 즐거움으로 여기시면서 안정을 찾으셨던가요?
어머님은 세상을 보시는 안목도 남다르시고 가정과 자녀들의 건강과 장래를 늘 염려하시면서 때로는 자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면서 살아오셨지요!
어머님의 그 지극한 사랑에 대하여 무슨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까?
어머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고해(苦海)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머님께서는 참담하던 지난 세월이 일생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순간적인 고생이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부족한 저희들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빌 뿐입니다. 여생 동안 어려웠던 지난 일들을 고생이라고만 생각지 마시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 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역경을 이겨내시던 지난 시절의 용기를 잃지 마시고 건강한 생을 영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형제들은 어머님의 거룩하시고 하해(河海)와 같으신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할머님의 온갖 정성이 묻어 자라난 손자·손녀들은 이제 성인이 다 되었고 제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저희들이 참된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조금도 외롭게 생각하지 마시고 이 자식들을 믿으시고 여생을 밝은 마음으로 지내시기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머님! 불효자가 왜 우는지를 환갑을 눈앞에 둔 이제야 소자는 알 것 같습니다. 우는 불효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동 준 김해署 납세지원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