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를 걷는 세관을 넘어 국가의 경제 안보를 지키는 세관으로
많은 국민은 세관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밀수품을 단속하며, 여행자의 휴대품을 검사하는 기관으로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관세의 부과·징수와 밀수단속은 세관의 가장 오래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오늘날 세관의 역할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국경을 넘는 것은 상품만이 아니다.
상품과 함께 기술과 자본, 데이터가 움직이고 공급망이 연결된다. 마약과 총기, 위조 상품과 위해물품도 국경을 넘는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공급망 의존,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입, 원산지 세탁도 국가 경제에 새로운 위험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제와 공급망의 국경 관리가 흔들리면 국가안보의 한 축도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세관도 달라져야 한다. 세관을 단순한 ‘징세 기관’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 국경을 관리하는 기관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세관의 출발은 관세였지만 역할은 이미 달라졌다
근대 세관이 만들어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관세를 징수하기 위해서였다. 국경을 통과하는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국가 재정으로 확보하는 것이 세관의 기본적인 임무였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개발 초기에는 관세가 국가 재정과 국내 산업 보호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높은 관세율과 수입규제 아래에서 세관은 관세를 정확하게 부과하고 밀수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FTA가 확대되면서 많은 교역 품목의 관세율이 낮아졌고 수출입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전자상거래와 해외직구의 증가로 이제 개인도 일상적으로 국제무역에 참여한다.
반면 세관이 국경에서 확인해야 할 위험은 훨씬 많아졌다. 마약·총기·불법 의약품·위조상품·유해물품뿐 아니라 원산지 위반, 전략물자 불법거래, 무역을 이용한 외환범죄와 자금세탁, 공급망 교란과 우회무역까지 국경 위험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세관의 업무는 이미 징세의 범위를 훨씬 넘어섰다. 문제는 세관의 실제 역할은 바뀌었는데 세관을 바라보는 국가적 인식과 정책 체계가 그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경제 안보 시대에는 '경제 국경'이 존재한다
자유무역 시대에는 국경의 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정책목표였다. 관세를 낮추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여 상품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개방의 대표적인 수혜국이다.
그렇다고 다시 국경을 닫자는 것은 아니다. 경제 안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닫힌 국경’이 아니라 ‘관리되는 국경’이다. 정상적인 무역은 더욱 빠르게 통과시키되 국가 경제에 위험을 불러오는 거래는 정확하게 찾아내야 한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와 부품의 공급이 어느 국가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지,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입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외국산 제품이 원산지를 세탁하여 국내시장으로 들어오는지 등을 국경단계의 무역정보를 통해 살펴야 한다. 이것이 경제 국경 관리다.
세관은 경제 안보 정보를 가장 먼저 만나는 기관이다
세관에는 다른 정부 기관이 갖기 어려운 강점이 있다. 바로 국경을 실제로 통과하는 상품과 무역 거래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한다는 것이다.
수출입신고에는 품명, 품목 번호, 가격, 수량, 원산지, 거래국, 수출 일자 등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를 장기간 축적하고 분석하면 특정 품목의 수입이 갑자기 증가하거나 감소하는지, 어느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지, 거래가격이나 원산지에 이상 징후가 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이러한 정보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국가 핵심 산업의 특정 부품 수입이 갑자기 감소하거나 특정 국가에 급격히 집중된다면 공급망 위험의 조기 신호일 수 있다. 특정 국가에 대한 무역구제조치 이후 제3국으로부터 동일하거나 유사한 물품의 수입이 급증한다면 우회수출입 가능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관의 통관데이터는 단순한 무역통계가 아니다. 잘 활용하면 국가 경제 안보의 조기경보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적발하는 세관'에서 '예측하고 예방하는 세관'으로
우리 세관은 이미 위험관리와 정보분석을 바탕으로 우범화물과 고위험 거래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에는 이러한 위험관리체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하루에도 막대한 양의 화물이 국경을 통과하고 해외직구와 특송화물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모든 물품을 검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수입자, 품목, 원산지, 가격, 거래경로, 과거 위반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위험도가 높은 거래를 더욱 정확하게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 경제 안보라는 새로운 관점을 더해야 한다.
기존의 위험관리가 탈세나 밀수 가능성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공급망 위험, 원산지 우회, 경제제재 회피, 국민안전 위험까지 포괄하는 국가 차원의 위험관리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세관이 범죄가 발생한 뒤 적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가 경제의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예방하는 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
'신속통관'과 '경제 안보'는 반대말이 아니다
경제 국경을 강화하자고 하면 기업의 통관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생길 수 있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모든 화물을 똑같이 검사하고 모든 기업에 같은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효율적인 국경관리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기업과 정상적인 거래는 더욱 빠르게 통관시키고, 위험도가 높은 화물과 거래에 검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안전한 무역은 더 빠르게, 위험한 무역은 더 정밀하게'
이것이 경제 안보 시대 세관행정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출국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관의 역할은 수입을 통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기업이 해외의 복잡한 원산지 규정과 공급망 규제, 수출통제 등에 대응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 국경 관리는 기업을 막는 행정이 아니라 안전한 무역을 만들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행정이어야 한다.
관세청을 국가 공급망 위험관리의 핵심 축으로 활용하자
경제 안보 정책은 어느 한 부처가 담당할 수 없다. 재정경제부의 관세정책, 산업통상자원부의 산업·통상·공급망 정책, 외교부의 경제외교 등 여러 정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 가운데 관세청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정책부처들이 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분석하고 정책을 만든다면 관세청은 국경에서 실제 상품의 흐름을 매일 확인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관세청이 보유한 수출입 데이터를 국가 공급망 위험관리에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난 제5회에서 필자는 ‘핵심 공급망 품목 관세 지도’를, 제6회에서는 ‘원산지 공급망 지도’를 제안했다. 이제 두 지도를 세관의 수출입 정보와 연결해 보자.
어떤 핵심 품목이 어느 나라에서 들어오는지, 원산지는 어디인지, 특정국 의존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가격과 물량에 이상 징후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분석한다면 국가 경제 안보의 조기경보 기능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관세청이 그 중요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세관의 성과를 ‘얼마나 걷었는가’만으로 평가해서도 안 된다. 관세를 얼마나 징수했는지, 탈루세액을 얼마나 추징했는지, 밀수를 몇 건 적발했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 안보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가 공급망의 위험을 얼마나 빨리 발견했는지, 위해물품을 국경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했는지, 우회무역과 원산지 세탁을 얼마나 정확하게 찾아냈는지, 정상적인 기업의 통관시간과 수출기업의 해외 통관애로를 얼마나 줄였는지도 중요한 성과가 되어야 한다.
세관행정의 목표가 경제 국경 관리로 확대된다면 성과지표 역시 국가 경제의 안전과 무역경쟁력을 함께 평가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국가 경제 국경 관리 전략’을 수립하자
필자는 경제 안보 시대에 맞추어 정부가 ‘국가 경제 국경 관리 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관세청의 역할을 관세징수와 밀수단속 중심에서 경제 안보·국민 안전·공급망 위험관리·무역원활화를 포괄하는 경제 국경 관리기관으로 명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둘째, 관세청의 수출입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제 안보 조기경보체계를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 핵심 광물과 소재·부품 등 전략 품목의 수입량과 가격, 원산지, 국가별 의존도 변화를 상시 분석해야 한다.
셋째, 위험관리체계를 더욱 고도화하여 정상적인 기업은 더욱 신속하게 통관시키고 고위험 거래에는 검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넷째, 산업·통상·외교·안보 부처와 관세청의 정보를 연결하는 범정부 경제 국경 위험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섯째, 세관의 성과평가도 징세와 적발 중심에서 공급망 안정, 국민안전, 기업지원과 무역원활화까지 포함하는 체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경제 국경을 잘 관리하는 나라가 경쟁력을 갖는다
대한민국 경제는 대외무역과 글로벌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만큼 열린 국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열린 국경과 무방비 국경은 전혀 다른 말이다.
세계가 경제 안보 경쟁에 들어간 상황에서 우리만 과거의 자유무역 질서가 그대로 계속되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개방은 유지하되 위험은 정확하게 관리하는 ‘스마트 경제 국경’이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세관이 있다.
지금까지 세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관세를 제대로 냈는가?”였다면 앞으로는 한 가지 질문이 더해져야 한다. “이 상품과 거래는 대한민국의 경제와 국민에게 안전한가?” 이제 대한민국 세관을 ‘징세 기관’에서 ‘경제 국경 관리기관’으로 전환할 때다. 그것이 경제 안보 시대에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새로운 경제 국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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