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별을 한다. 이별이라고 하면 흔히 사랑하는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여러 형태의 이별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어떤 이별은 내가 선택하고, 어떤 이별은 상대가 선택하며, 또 어떤 이별은 누구의 선택도 아닌 채 찾아온다.
어린 시절의 이별은 대체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졌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비슷한 이별을 반복했다. 친했던 친구와 다른 학교에 진학하기도 했고, 부모님의 전근으로 하루아침에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했다. 그때의 이별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 학제가 그렇게 되어 있었고 삶이 우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인도했을 뿐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별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처음으로 이성을 만나 설렘과,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감정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스스로 시작한 관계에는 언젠가 그 관계를 끝내야 하는 선택도 함께 따라왔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만나기 시작했지만 어느 날 한 사람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다. 겉으로는 두 사람이 합의하여 헤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별의 마음은 대개 어느 한쪽에서 먼저 시작된다. 한 사람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그것을 상대에게 전하면, 다른 한 사람은 대부분 그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만남은 두 사람의 마음이 함께해야 시작할 수 있지만, 이별은 반드시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이별을 당한다는 것이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상대가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차피 마음 아픈 이별을 해야 한다면, 내가 먼저 관계를 끝내기보다는 상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편이 훗날 후회를 덜 남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상대가 선택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일이 덜 아프다는 뜻은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이별은 더 큰 당혹감과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고, 때로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다만 이별의 순간에 느끼는 아픔과 훗날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되돌아보며 느끼는 후회는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누가 더 아픈가의 문제가 아니다. 소중한 관계라면 내가 먼저 그 끝을 정하기 전에 그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보자는 것이다.
관계를 내가 먼저 끝내고 나면 시간이 지난 뒤 여러 생각이 뒤따를 수 있다.
‘조금 더 기다려볼걸.’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닐까.’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관계를 되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일일수록 지나간 뒤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소중했던 관계를 스스로 끝냈다면, 이별의 아픔이 가라앉은 뒤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 보았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에 조금 더 아프더라도 훗날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먼저 관계를 끝내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보는 편이 낫다. 상대가 먼저 관계를 끝내려 하더라도 누가 더 잘했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앞세우기보다, 그 관계가 소중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 볼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이 크지 않거나 오히려 상대의 잘못이 더 크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해가 있다면 풀려고 노력하고, 먼저 연락하거나 만나자고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고 한 번 더 다가가는 것도 소중했던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억지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잘잘못과 자존심에 앞서 그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의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사람이 선택한 이별을 받아들이면 된다.
사람의 마음은 강제로 붙잡아 둘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는데도 상대의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터는 내 몫이 아니다. 떠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곁에 붙잡아 두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이별은 연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마음 아픈 이별은 오랜 세월을 함께해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굳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던 사람과 멀어지는 경우이다.
한때는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생각과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관계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수 있다. 각자의 삶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이 곁에 들어오며 처한 환경과 이해관계도 달라진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겼을 말이 서운함으로 남기도 하고, 사소한 오해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 연락과 만남이 줄어들기도 한다.
이런 관계의 이별은 남녀 사이의 이별과는 또 다른 아픔을 남긴다. 특히 관계를 되돌리려는 마음이 서로 같지 않을 때 더욱 그렇다.
한쪽에서 먼저 연락하고 손을 내밀며 오해를 풀려고 해도, 상대가 계속 거리를 둔다면 관계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회복될 수 없다. 그렇다고 소중했던 관계를 먼저 포기할 필요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본 뒤에도 상대의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 이별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이 멀어졌거나 관계가 계속해서 상처만 남긴다면 놓아야 할 때도 있다. 다만 한때 소중했던 관계라면 너무 쉽게 끝을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한다.
어쩌면 이별의 마지막 품위란 쉽게 포기하지도 않고 억지로 매달리지도 않는 데 있는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보고, 그래도 상대가 떠나기를 원한다면 그 마음을 존중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면 된다.
이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먼저 놓지 않으면서도 끝내 떠나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 것이다. 할 만큼 해보았기에 보내줄 수 있고, 끝까지 소중히 여겼기에 마지막에는 놓아줄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이 소중했던 관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까지 겪어온 마음 아픈 이별의 순간마다 내가 먼저 관계의 끈을 놓지는 않으려고 했다. 한때 소중했던 관계라면 끝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다해보려 했고, 그래도 상대가 떠나려 한다면 그때는 받아들였다.
이별의 아픔까지 피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먼저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지나간 이별을 돌아볼 때 ‘조금만 더 해볼걸’ 하는 후회는 덜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