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기고]트럼프 관세, 법원에 막혔지만 끝난 것 아니다

2026.05.08 15:59:48

한국 기업은 이제 '관세'가 아니라 '미국의 산업안보 체제'를 준비해야

 

미국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글로벌 보편관세에 대해 “법적 권한을 넘어선 조치”라는 판단을 내렸다. 앞서 연방대법원 역시 대통령의 비상경제권한을 근거로 한 광범위한 관세 부과에 부정적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트럼프식 보호무역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를 “트럼프 관세의 종말”로 해석하는 것은 현실을 오해하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관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하고 법적으로 방어 가능한 방식으로 보호무역 체제를 재설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관세 자체’가 아니라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의 변화다.

 

트럼프 진영이 추진했던 글로벌 보편관세는 사실상 모든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미국 헌법상 관세권은 본질적으로 의회에 속한다. 대통령의 비상경제권한을 근거로 세계 전체를 상대로 장기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법적으로 무리라는 것이 이번 판결의 본질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 내부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 견제, 공급망 재편, 제조업 부흥이라는 전략은 이미 공화·민주 양당의 공통된 국가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반도체법(CHIPS Act), 대중국 첨단기술 규제 등을 통해 사실상 산업보호 정책을 강화해 왔다. 즉, 미국의 보호무역은 특정 대통령의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미국의 구조적 국가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은 법원에서 방어가 어려운 ‘전면적 보편 관세’ 대신, 보다 정교한 법적 수단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 대표적인 도구가 바로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다.

 

301조는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응하기 위한 조항이며, 232조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산업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장치다. 이미 철강·알루미늄·자동차·반도체·배터리·조선·의약품 등 전략산업은 미국의 안보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의 관세 문제를 “수출 비용 증가”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미국 통상정책은 단순한 세율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제 공급망 전체를 안보 체계 안에서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즉, 한국 기업이 직면하게 될 위험은 단순한 관세 인상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구조적 압박이다.

 

첫째, 공급망 검증 강화다. 미국은 중국산 우회수출 여부, 핵심 원재료의 원산지, 강제노동 연계 가능성 등을 더욱 강하게 점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배터리·전기차·태양광·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 공급망 비중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둘째, 미국 내 생산 요구 확대다. 미국은 단순히 “미국에 수출하라”가 아니라 “미국 안에서 생산하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IRA 세액공제나 정부조달 정책도 같은 흐름이다. 앞으로 미국 시장 접근은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현지 생산·고용·투자 여부와 연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셋째, 기술·안보 규제의 결합이다. 반도체, AI, 배터리, 조선 등은 이제 순수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 문제로 취급된다. 미국은 기술통제, 수출규제, 투자심사(CFIUS), 공급망 규제 등을 동시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 기업은 “미국이 관세를 올릴까”를 고민할 단계가 아니라, “미국 산업안보 체제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공급망의 탈중국 리스크 점검이 필요하다. 단순히 최종 생산지가 어디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핵심 원재료와 중간재까지 포함한 공급망 전체를 미국 기준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미국 내 전략적 투자 확대를 검토해야 한다. 단순한 생산거점 확보가 아니라 현지 고용, 기술협력, 정치적 네트워크 구축까지 포함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앞으로 미국 시장은 경제 논리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셋째, 통상·법률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관세 문제가 정부 간 협상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기업이 직접 원산지 증명, 공급망 검증, ESG·강제노동 대응, 수출통제 준수 등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넷째, 산업별 미국 정책 변화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통상정책은 이제 재무부, 상무부, 국방부, USTR, 의회가 동시에 움직이는 복합 구조가 되고 있다. 기업 차원의 정보력과 정책 대응력이 경쟁력의 일부가 되는 시대다.

 

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은 보호무역의 후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이 보다 합법적이고 정교한 방식으로 산업패권 전략을 강화하는 과정의 일부에 가깝다.

 

트럼프 관세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보편관세”에서 “정밀관세”로, “세금 정책”에서 “산업안보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단순한 관세 대응이 아니라, 미국 중심 공급망 질서의 재편이라는 더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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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기 관세법인 에이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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