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제도도 서류더미 속에 잠들어 있으면 효용이 없다. 사전적·선제적인 적극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이 세세한 규정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필요한 도움을 놓치지 않도록 현 정부에서는 “장관 책임 하에 적극행정을 독려하라”며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필요성을 더욱 실감케 하는 사례가 나와 눈에 띈다. 관세청이 28일 코로나 19를 계기로 도입한다고 밝힌 '징수유예' 제도다.
◆ 관세청, 내달 1일부터 징수유예제도 도입…관계법령 근거 심의 거쳐 가부 결정
관세청은 내달 1일부터 징수유예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이 제도는 코로나19 이전에도 관계법령에 근거가 마련돼 있었다.
관세법 제26조는 ‘관세의 징수에 관하여는 국세징수법의 예를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세징수법은 제15조~제17조에 따라 징수유예 제도를 두고 있다.
관세청은 국세의 징수유예 제도를 관세에도 허용할 수 있는지 지난 16일 내부에 설립된 적극행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가부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관세법 제26조, 국세징수법과 개정교토협약을 검토해 해당 제도가 관계법령의 개정 없이 시행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관세의 징수유예 제도가 현행 법상 문제가 없다면, 코로나19 이전에도 도움이 필요한 기업들이 납부지연 가산세 면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금융위기 사태·메르스 등 코로나19에 준한 국가재난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징수유예 제도가 활용될 수 있었는데, 이제야 통로가 열린 셈이다.
이와 관련, 관세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도와줄 것이 없는지 살피던 차에 제도를 발굴하고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을 계기로 법령의 행간 등의 빈 부분을 메꾸고 하는 작업이 가능할 것 같다”며 “‘적극행정’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다”고 말했다.
◆ 적극행정지원위원회, 관세청 차장 및 내·외부위원으로 구성…사전적·선제적 대응
관세청에 따르면 그간 징수유예를 신청하겠다고 요구한 기업 등 외부의 수요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관세규정에 밝지 않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국세에 있는 징수유예 제도를 관세에서도 적용받을 수 있다고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제라도 빛을 보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조금 더 선제적인 홍보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다만 지난해 적극행정 운영규정에 따라 적극행정지원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전적·선제적인 업무 처리를 독려해 온 점은 희망적이다.
관세청 차장 및 내·외부위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사후에 이뤄지는 감사원의 면책제도만으로는 적극행정을 정착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각 부처 공무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적극행정제도를 뒷받침하는 기능을 한다.
관세청은 징수유예 제도를 도입하며 “앞으로 적극행정지원위원회를 더욱 폭넓게 활용해 국민·기업의 불편·부담 해소와 경제활력 제고에 이바지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18년 인사혁신처가 주관한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관세청이 국민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하는 등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것도 개선의 행보로 보인다.
코로나19가 깨운 정책개선이 단발성 적극행정으로 끝나지 않고 복지부동, 무사안일의 소극행정을 타파하는데 보탬이 되려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평가된다.
적극행정을 위해서는 공무원의 전문성도 강조된다. 지난해 세정가 한 인사는 국세청의 정책고객 평가와 관련해 “공무원이 적극행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맡은 일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