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것은 1977년 7월이다. 아시아에서 최초였다. 일본에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것은 우리보다 12년 늦은 1989년이다. 소비세 과세제도에 있어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율은 도입 당시부터 현재까지 10%의 단일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도입 당시 기본세율은 13%였으나 탄력세율을 적용하면서 실제 적용세율은 10%였다. 이후 세법 개정을 통해 기본세율이 10%로 조정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에 비례해 세금을 과세한다. 아무리 거래단계가 많고 복잡하더라도 이중·삼중으로 세금을 누적해 과세하지 않는다. 부가가치세 도입 이전에는 영업세가 과세됐다. 영업세는 거래단계마다 세금을 중복해 과세했기 때문에 이중과세의 문제가 심각했다. 부가가치세는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수출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전액 환급해 줘 수출가격 경쟁력이 저해되지 않도록 하여 수출 증대에도 기여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가마다 과세방법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부가가치세 과세의 기본 구조는 판매시에 부과한 세금(매출세액)에서 매입시 기부담했던 세금(매입세액)을 공제한 차액을 부담하는 체계로 돼 있다. 이러한 세금계산·납부·징수방식은 그 절차와 방법이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는 부가가치세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 중심으로 부가가치세가 과세되고 있는 것도 세제의 복잡성에 기인한다.
부가가치세가 가장 먼저 도입된 구미 선진국에서의 부가가치세 세율은 20% 내외이다. 헝가리와 스웨덴이 각각 27%와 25%로 가장 높다.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이 20% 수준이고 룩셈부르크가 15%로 낮다. 일본은 5%로 부가가치세 도입 국가가운데 가장 낮다. 우리나라와 호주는 10%로 일본 다음으로 세율이 낮다.
부가가치세가 처음 도입됐던 60년대말∼70년대 초에는 세율이 10% 초반대인 국가들도 많았다. 이후 점차 세율이 인상되면서 최근에는 평균 20% 수준에 도달했다. 도입 시점부터 현재까지 10% 세율이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서구선진국에서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했던 가장 큰 요인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세원 확충에 있었다. 최근에는 점증하는 복지재정 소요 충당을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계속 인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을 비롯해 복지국가 치고 부가가치세율이 높지 않은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많고 많은 세원가운데 왜 부가가치세인가? 부가가치세는 세부담 구조가 역진적이기 때문에 세율을 인상하면 소득재분배 기능에 역행하는데, 왜 부가가치세율을 인상했는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원 배분의 왜곡 효과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서구 선진국은 이미 소득세 과세비중과 최고한계세율 모두 높다. 이로 인해 소득세의 노동공급 저해 및 그로 인한 생산저감 효과가 크다. 따라서 자원 배분의 왜곡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게 증폭되기 때문에 소득세 과세 강화에 한계가 있다. 그런 연유로 부작용이 작은 부가가치세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속 가능한 재원 확보를 위해서이다. 인구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생산가능연령인구 비중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소득세원 분포도 축소되고 있다. 소득과세를 통해서는 장기적으로 재원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염려가 작은 부가가치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셋째, 소득재분배 효과는 부가가치세가 아닌 재정 지출을 통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증세의 목적이 복지재정 소요 충당을 위한 것이라면, 추가된 복지지출을 통해 기대되는 정(+)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부가가치세율 인상에 인한 부(-)의 효과를 압도한다면 결코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부정적이지 않다. 서구 선진국에서의 부가가치세율의 인상 배경에는 이러한 정책 조합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구 선진국의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소득세 실효과세율이 낮고 면세자 비율도 높기 때문에 소득세 과세기반 확충이 우선시된다. 그러나 인구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생산가능연령인구가 감소할 것인 만큼 소득과세에 의존하기 어려운 시기가 조만간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통해 세원이 넓은 소비과세 비중을 높이는 문제가 선택이 아닌 필연의 문제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는 역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세율을 인상하더라도 분배구조에 미치는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인구가 고령화되면 세부담 구조가 다소 역진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역진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가 모의실험을 통해 추산해 본 결과 비록 부가가치세 부담 구조가 역진적이더라도 증세된 재원을 복지지출에 충당하면 소득분배구조를 상당한 정도 개선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
부가가치세율의 인상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막연히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금기시하기 보다는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실제적 효과를 기준으로 과학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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