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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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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황실 유물인데…" 알고보니 싸구려 골동품

지난해 2월19일. 'E중공업' 회장으로 불리던 김모(81)씨는 박모(58)씨를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에 데리고 갔다.

도자기류 4000여점이 진열돼 있던 그 곳은 흡사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김씨는 박씨에게 오피스텔 곳곳을 둘러보게 한 뒤 "중국 정치가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대만으로 도망쳤을 때 황실의 국보급 유물을 군함으로 옮겼고 이중 일부를 건네받아 정부의 지시로 창고에 보관해 왔다"며 관심을 유도했다.

그리고는 "창고를 열려는데 돈을 빌려주면 1주일 내 차용금의 절반을 더 얹어 갚겠다. 도자기를 담보로 잡아주겠다"고 속여 5억여원을 받아 챙겼다. 박씨의 의심을 피하려고 허위 차용증까지 써줬다.

그러나 김씨는 빌린 돈 상환을 차일피일 미뤘고, 석 달이 지나 박씨의 빚 독촉이 심해지자 더 큰 돈을 마련할 궁리를 했다.

지인인 최모(63)씨를 끌어들여 도자기를 거액에 내다 팔기로 한 것이다. 최씨에게는 E중공업 부회장 직책까지 줬다.

김씨와 최씨는 그해 5월24일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J씨에게 도자기 12점을 "중국 국보급 문화재"로 소개한 뒤 112억원에 사라고 권했다.

하지만 가격 흥정을 이뤄지던 중 가짜 고미술품 거래 사기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들이닥쳤고, 이들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조사 결과 김씨가 운영한다던 E중공업은 서류상 회사(유령회사)였다. 그가 사용해 온 휴대전화 2대 역시 대포폰이었다.

또한 종로 오피스텔 외에 또 다른 오피스텔 3곳에서 6000여 점의 도자기·접시·불상류가 추가로 발견됐는데, 한국고미술협회 측에 3차례에 걸쳐 감정의뢰한 결과 모두 가치가 없는 모조품으로 확인됐다.

알고 보니 종로 인사동의 중국 보따리상으로부터 1개당 1만원도 채 안되는 값에 외상 구입한 것들이었다. 모조품 보관장소인 오피스텔은 수 개월째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지 못해 단전·단수까지 된 상태였다.

김씨는 범행이 발각되고도 "40여 년에 걸쳐 모은 것들로, 도자기의 일부는 진품"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박씨에게 빌린 5억여원을 외상으로 사들인 도자기 비용과 밀린 오피스텔 임대료·관리비로 지출했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공범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씨의 제안으로 범행을 도왔을 뿐, 박씨에게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김씨를 구속하고 최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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