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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6. (금)

내국세

'국세청 본업무만 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도와주오'

-창간 50주년 기념 기획특집-

급기야 이건춘 국세청장은 1998년 9월23일 개최 된 전국지방국세청장 회의에서 '폭탄발언'을 했다. 전임 국세청장과 차장의 대선자금 모금 관련 유감을 표명하므로서 사실상 '세풍' 사건을 처음으로 공식언급 한 것이다. 그때까지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검찰 수사속보를 접했던 세정가 인사들은 국세청장 발언에 경악했다. 이건춘 청장은 '국민의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면서 '(국세공무원)반성하자'고 말했다. 특히 '원칙에 충실한 국세행정, 세수를 위한 세무조사는 절대 안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같은 해 10월 26일부터 시작 된 국세청에 대한 국회국정감사는 예상했던 대로 '세풍(稅風)국감'이 되고 말았다. 이건춘 국세청장은 의원들 앞에서 허리굽혀 사과 하고, '국세청이 본연의 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도와 달라'는 뼈 있는 말로 의원들을 머쓱케 했다.   

 

'세풍사건'이란 무엇인가.- 1997년 제 15대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들로부터 거액을 불법모금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법원판결 등에 의하면 15대 대통령 선거기간 중 임채주 국세청장과 이석희 국세청 차장, 주정중 국세청 조사국장 등이 한국타이어, 대우, 극동, 금강제화, 한국화장품, 한진, 한국야쿠르트, 쌍용, 진로, 신세계, 현대, 대한전선 등 23개 기업에 압력을 가해 불법으로 166여억 원을 모아 한나라당 대선캠프에 전달했다.  

 

1998년 8월 말 한나라당 소속 서상목 의원이 미국으로 출국하려다 김포공항에서 출국이 저지되면서 그 단초가 드러나기 시작한 '세풍사건'으로 인해 임채주 전 국세청장과 이석희 전 국세청차장 등이 사법처리 됐으며, 숱한 정치적 격랑을 일으킨 후 '오욕의 정치역정'으로 기록돼 있다. 세풍사건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김대중정부 초 임채주 국세청장이 서둘러 물러나고, 이석희 차장이 후임 바통을 왜 잇지 못했는 지 그 이유가 명백히 확인됐다.    

 

혼(魂)이 빠진 국세청은, 험난한 역경 속에서, 대대로 내려 오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는다. 1999년 1월 2일 개최된 신년시무식에서 '국세행정개혁기획단'을 발족시키는 등 세정개혁을 현안과제로 선정했다. 이건춘 청장은 '21세기 선진세정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기회 있을 때 마다 기획단을 독려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 무렵 국세청 감찰직원이 한국세정신문 영업팀 뒷조사를 한 것이 발각됐다. 자초지종을 파악해 본 결과 한국세정신문에 보도된 기사가 국세청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유신사무관 출신인 본청 김ㅇㅇ 감찰과장이 일탈된 충성심에서 임의로 '뒷조사'를 주도한 것이 확인됐다. 상급관리자의 정중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 한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국세청의 개혁 의지가 일부 겉돌았음을 보여 준 일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풍 사건'으로 자존심을 한 껏 구긴 국세청은 대외 신인도 회복과 직원 사기진작을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6급이하 1천2백14명을 같은 해 1월 25일자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과세품질향상을 담은 정밀과세 지침을 수시로 일선에 하달하고 독려했다. 그 일환으로 유흥업소 과세특례배제 지역을 읍·면까지 확대 하므로써 신흥개발지역의 세원분포를 꼼꼼히 관리했다. 

 

이와함께 친절운동을 보다 심도 있게 정착시킨다는 취지에서 '불친절 삼진아웃'제를 도입 하고, '불친절 신고센터'를 설치 했다. 또 탈세제보 24시간 접수체제를 가동하는 동시에 '세금감시고발센터'를 설치했다. '탈세꾼'들의 탈세기도를 사전에 차단할 의도가 담겨 있었다. <계속>

 

서채규 주간 <seo@tax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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