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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4.25. (목)

소득재분배를 위한 세제개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1990년대말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이후 소득분배격차가 급격하게 확대됐다. 이에 따라 누진과세 강화를 통한 조세의 소득재분배기능 강화의 주장이 빠르게 확산됐다. 정부도 급격한 소득분배격차의 확대에 대응해 복지제도 및 재정지출 확대와 함께 소득세·재산세의 누진과세를 강화했다.

 

 나름대로 그런 개편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본래의 의도와 반대되는 효과도 많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소득세 누진과세 강화를 위해 세율구간 조정시에 하후상박식 개편을 통해 중소득구간의 구간조정율을 고소득구간보다 크게 해줬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10여년 이상 세율구간을 고정시켜 둠에 따라 발생하는 왜곡효과, 즉 물가세 효과를 효과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동시에 세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해지지 않도록 한 것은 소득세제의 정상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2000년대 이후 거듭된 세제개편 과정에서 누진과세 강화에 초점을 맞춰 소득공제를 지나치게 확대해 근로소득세 과세자비율이 급속히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소득세 부담의 누진도·집중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의도와 달리 약화된 측면이 있다.

 

 세부담의 누진도란 세금을 1원 징수할 때 소득분배구조에 미치는 효과가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한계적 개념 또는 평균적 개념이다. 소득재분배 효과는 세금 전체의 소득분배 효과를 의미하는 총량적 개념이다. 따라서 양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누진도를 강화해 세금 1원당 소득재분배 효과를 높이더라도 누진도 강화를 위해 감소된 세수규모가 누진도의 강화 속도보다 빠르다면, 누진도 강화에도 불구하고 총량적 의미를 지니는 소득재분배 효과는 오히려 축소된다. 지난 10여년간의 소득세제 개편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와 다소 맥락이 다르기는 하지만 재산제세의 경우도 유사하다. 2000년대 이후 재산과세 강화(종합부동산세 도입 등)를 통해 소득재분배 효과를 얻고자 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종합부동산세 등 재산과세의 강화가 미친 소득재분배 효과는 거의 없었다. 이는 종합부동산세의 과세대상이 되는 부동산 고액자산가들의 자산분포가 소득분포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자 가운데에는 상당한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은퇴 등에 따라 소득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종합부동산세 등 재산과세의 강화가 고액 자산가들의 유동성을 줄이는 측면에서의 재분배 효과는 분명히 있었으나, 그것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의 증가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진단(소득불평등도의 확대)과 처방(부동산 자산 재분배)이 불일치한 대표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도 소득 재분배를 위한 조세정책 도구로 재산과세를 이용하는 경우가 드문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소득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대체로 610%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3%(2009년 필자 추정치)보다 훨씬 크다. 선진국에서 소득세 부담의 누진도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다. 반면에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우리의 2배 이상이다. 그런 차이는 소득세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소득재분배 효과란 세부담의 누진도와 세수규모 두 가지 모두 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누진도에만 집착함에 따라 소기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

 

 누진도 또는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표 가운데 10분위 배수라는 것이 있다. 소득 최상위 10%를 소득 최하위 10%로 나눈 값을 말한다. 2009년 현재 노동과 자본의 공급을 통해 수취하는 시장소득의 10분위 배수는 우리나라가 15.3인데, 영국은 52.4로 우리나라보다 소득불평등도가 훨씬 크다. 영국은 우리보다 노인인구 비율이 훨씬 높고, 생산성 등에 따른 보수 격차도 우리보다 훨씬 크다. 그런 차이로 인해 영국의 소득불평등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다.

 

 2009년 현재 소득세의 10분위 배수는 영국이 138.7, 우리나라가 415.9이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누진도가 영국보다 훨씬 높다. 소득세 부담은 영국이 총소득의 13.1%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3.3%에 불과할 정도로 양국간의 차이가 크다. , 두 나라 사이에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의 크기를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소득세 부담의 누진도보다는 소득세수 규모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재분배 효과는 조세보다는 재정지출정책이 일반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조세의 경우에는 납세자들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측면에서 재분배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고소득층의 소득비중 하락에는 효과적이지만, 소득세를 통해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증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대로 재정지출의 경우에는 수혜대상을 저소득층에 한정함으로써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조세 측면에만 치중해 소득재분배를 도모한 측면이 있다. 소득재분배 효과 제고를 도모하고자 한다면 누진과세 강화만을 부르짖지 말고 과세기반을 넓히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또한 같은 값이면 조세보다는 재정지출을 통해 재분배 효과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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