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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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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소리 내는 장관들···'부처간 잡음'? '건강한 토론문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이 마무리되면서 부처 장관들도 본격적으로 주요 정책을 놓고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장관이 공개 회의 석상에서 정부 정책 방향을 놓고 부총리를 향해 이의를 제기하는 등 이전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돌연 발언권을 신청했다.

김 장관은 "어제 정부의 5개년 계획 100대 과제를 보니 재정 당국에서 내놓은 재원 조달 방안은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정부의 증세 의지가 후퇴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에는 소득세 최고 구간을 조정하고 법인세율은 좀 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증세 의지가) 너무 약해진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김 장관이 발언을 시작하자 김 부총리는 "기자들이 나간 뒤 얘기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통상 경제관계장관회의는 경제부총리의 모두발언까지만 언론에 공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장관은 "(기자들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소득세는 국민들에게 경제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좀 더 나은 복지 등을 하려면 형편이 되는 측에서 조금 더 부담을 해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정직하게 얘기해야 한다"며 "해내지도 못하는 '지하경제 활성화' 같은 얘기를 하지 말고 정직하게 국민들에게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법인세의 경우 우리(더불어민주당)가 야당일 때부터 실효세율을 올리는 법인세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내렸던 법인세율이 실질적으로 낙수효과로 작동하지 않았고, 최저한세율 도입 정도 가지고 커버가 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토론을 열어주셔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김 장관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회의장은 잠시 동안 술렁였다. 부처 장관이 공식 회의 안건이 아닌 문제를 놓고 상급자인 부총리에게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주재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몇 시간 앞두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재원 조달 계획을 문제삼은 것은 정치인 출신 장관이 부총리를 넘어 청와대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도 있었다.

하지만 김 부총리가 토론을 흔쾌히 승낙하면서 긴장감은 누그러졌다.

김 부총리는 "말씀 감사하다. (김 장관이) 법인세와 소득세 문제를 제기했는데 굉장히 민감하고 재정 당국에서 여러 검토가 있었다"며 "기왕 얘기를 해주셨으니 토론을 해보도록 하자"고 응했다. 

이날 회의는 다음주 발표 예정인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김 장관의 제안으로 법인세와 소득세 증세 문제에 대한 토론도 함께 진행됐다.

부처 장관 중 3~4명은 김 장관처럼 증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2~3명은 증세 논의보다는 국정과제와 경제정책방향을 국민에게 알리고 추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한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장관들이 사전 조율 없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부처간 갈등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건강한 토론 문화가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실 이런 토론 문화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문한 사항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후 가진 첫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회의는 미리 정해진 결론이 없고, 배석한 비서관들도 언제든지 발언할 수 있다"며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참모라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씀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또 "대통령님 지시사항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느냐"는 임종석 비서실장의 질문에 "대통령 지시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문한 격 없는 토론이 행정부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 회의가 다소 '약속대련'처럼 진행됐던 것과 비교하면 이런 상황이 무질서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하지만 건강한 토론 문화가 자리잡아가는 바람직한 과정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는 금융위원회를 향한 공정거래위원장의 비판 발언으로 관계가 싸늘해졌던 두 부처간의 화해 분위기도 연출됐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이날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회의실에 입장하자 옆으로 다가와 잠시 대화를 나누자고 요청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귓속말을 나눴다.

김 부총리는 두 장관이 '밀담'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사과 하신 걸로 아는데 또 하는거냐"며 농담을 건넸고, 김 위원장은 "거듭 사과했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최 위원장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는 "김 위원장의 평소 생각은 잘 알고 있다"며 "따로 그렇게 (사과) 안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같이 해야할 일이 많다"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쁜 짓은 금융위가 더 많이 했는데 욕은 공정위가 더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었고, 취임 후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는 작심 발언을 했고, 공정위와 금융위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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